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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한民族史 > 상고사 > 삼 한
  ★ 진한(辰韓:晉, 秦과 동일계)은 1세 낭야무왕(武王. B.C.1285년 丙申年. 재위 54년)부터 35대인 출공착(出公鑿. B.C.234년 壬辰年. 재위 3년)까지 1054년간 존속했다.
  진한(辰韓)은 진한(晉韓)이며, 진한(秦韓)이기도 하다. 진한은 진조선(眞朝鮮)이다.


 ★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秦之爲辰 據左傳辰嬴可證』
진(秦)이 진(辰)임은 《춘추좌전》의 ‘진영(辰嬴)’을 근거로 하여 증명할 수가 있다.

  ★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 世紀三, 三韓편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辰韓在馬韓之東, 始有六國梢分爲十二國, 弁辰六十二國, 有巳柢國, 不斯國, 弁辰彌離彌凍國, 弁辰接塗國, 勤耆國, 難彌離彌凍國, 弁辰古資彌凍國, 弁辰古淳是國, 冉奚國, 弁辰半路國, 弁樂奴國, 軍彌國, 弁辰彌鳥邪馬國, 如湛國, 弁辰甘路國, 戶路國, 州鮮國, 馬延國, 弁辰狗邪國, 弁辰走漕馬國, 弁辰安邪國, 弁辰瀆盧國, 斯盧國, 優由國, 弁辰合二十四國, 中略, 大國四五千家, 小國六七百家, 總四五萬戶其十二國, 屬辰王常用馬韓, 八作之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 弁辰與辰韓雜居, 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晉書弁辰十二國各有渠師皆屬於辰韓, 按古初漢水以南之地爲韓國人稱, 辰國以其避秦宋故通謂之辰辰之爲秦據, 左傳辰嬴可證, 後漢書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盡王三韓之地者是也, 又三國志馬韓官有中郞將軍都尉等稱皆秦官也, 以此益信辰國之爲秦也, 馬韓今漢水以南至湖南等地, 辰弁二韓今嶺南地也』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었다.
  처음에는 여섯 나라였으나, 나누어져 12국이 되었다. 변한과 진한이 합쳐 62국이다. 이들 나라는 다음과 같다.

  이저국 · 불사국 · 변진리리미동국 · 변진접도국 · 근기국 · 난미리미동국 · 변진고자미동국 · 변진고순시국 · 염해국 · 변진반로국 · 변락노국 · 군미국 · 변진미국 · 변진미오사마국 · 여담국 · 변진감로국 · 호로국 · 주선국 · 마연국 · 변진구야국 · 변진주조마국 · 변진안야국 · 변진독로국 · 사로국 · 우유국이다.
  
  변진한을 합해 모두 24국이다. 중략.
  큰 나라는 4·5천 가, 작은 나라는 6·7백 가(家)로 총 4·5만 가호(家戶)이다.
  진(辰) 왕은 보통 마한에서 뽑았다. 8대를 이어가는 동안 진왕은 자립으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변진과 진한은 함께 뒤섞여 살았다. 독로국과 왜국(倭國) 경계에 열두 나라가 있었는데, 제각기 왕이 있었다.
  진서(晉書)에 의하면 변한과 진한은 제각기 열두 나라(十二國)이며, 나라마다 우두머리가 있었으나, 모두 진한에 속해 있었다.
  살펴보건대, 옛날 한수(漢水) 이남은 한국땅(韓國地)이다.

  ◇ 漢水는 본래 섬서성(陝西省) 영강현 북쪽 파총산에서 흘러내린다.
  동한수(東漢水)를 양수라고 하는데, 양수는 본래 감숙성 롱서(瀧西)에서 흘러온다 하여 롱서수명(瀧西水名)이라고 한다. 이 물이 멀리 동남으로 가득히 흐른다하여 漢水라고 한다.
  특히 동(東)으로 흘러가는 곳은 호북(湖北) 서북쪽이며, 東南으로 흘러가는 물은 숙강구 입구에서 회단장으로 흘러간다.
   즉 감숙성(甘肅省)에서 흘러가는 황하(黃河) 이남은 모두 한국땅이며, 한국 사람이다.
  
  진(辰)나라는 진(秦)과 송(宋)나라에서 피신 온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진(辰)은 진(秦)나라로부터 의거한 거나 마찬가지다.
  좌전(左傳)에 의하면 진(辰)은 영(嬴:진시왕,), 즉 진(秦)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마한은 최대로 크고 그 종족이 진왕(辰王)과 진왕(盡王)이 되었으며, 모두 삼한(三韓)의 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마한의 관직 중에 중랑장군도위 등의 호칭이 있는데, 모두 진(秦)의 관직명과 같다.
  이것을 보더라도 진국(辰國)이 진(秦)이 되었다는 것에 더욱 믿음이 간다.
  마한은 지금의 한수(漢水) 이남에서 호남성 등까지다. 그리고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은 영남(嶺南) 땅이다.

  ◇ 영남(嶺南) 땅을 조사해 보았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영남(嶺南)은 오령지남야(五嶺之南也)라고 되어있다.
  지명사전에 있는 본문을 간략하게 간추려 소개한다.
  서쪽의 곤륜산을 동쪽으로 그으면 서안 밑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이 있고, 동으로 웅이산(熊耳山)이 있으며, 동으로는 동해(東海, 三國時 이후에도 동해라고 함. 지금의 黃海)에 이른다. 대체로 말해 사천성, 귀주성, 호남성 이남을 말한다. 특히 광동성, 광서성, 운남성 등지를 영남이라고 한다.

  ★ 후한서(後漢書) 진한(辰韓)편을 살펴보자.
 
  『辰韓, 耆老自言秦之亡人避苦役, 適韓國馬韓割東界地與之,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진한은, 늙은이가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도망을 한 자들이 고역을 피해 한국으로 갔다. 마한에서는 그 동쪽 땅을 갈라 그들에게 주었다. 진나라 말과 같았으므로 그 이름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

  ★ 진서(晉書) 秦韓편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辰韓, 馬韓之東, 自言秦之亡人, 避役入韓, 韓割東界以居之, 立城柵, 言語有類秦人, 由是或謂之爲秦韓, 初有六國, 後稍分爲十二, 又有弁辰, 亦十二國, 合四五萬戶, 各有渠帥, 皆屬於辰韓, 辰韓常用馬韓人作主, 雖世世相承, 而不得自立, 明其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也, 地宜五穀, 欲饒蠶桑, 善作縑布, 服牛乘馬, 其風俗可類馬韓, 兵器亦與之同, 初生子, 便以石押其頭使扁, 喜舞善彈瑟, 瑟形似筑, 武帝太康元年, 其王遣使獻方物, 二年復來朝貢, 七年又來』

  辰韓은 馬韓의 동쪽이다. 秦나라 사람이 스스로 말한 바에 의하면, 부역을 피해 韓으로 들어왔다. 한(韓)은 동쪽 경계에 살게 했다. 이곳에 성(城)과 책(柵)을 세웠다. 말은 秦나라 사람과 같았다. 그 연유를 혹 설명한다면 진한(秦韓)이라 했다.
처음에는 여섯 나라였으나 그 후 차츰 12개 국으로 나누어졌다. 또는 변진(弁辰) 역시 12개 국으로 되었는데 모두 합하여 45만 호였다.
  고을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었다. 모두가 辰韓에 속해 살았다.
  辰韓은 언제나 馬韓人으로 우두머리를 삼았다. 비록 대대로 이어졌지만 自立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흘러온 사람들인 까닭에 마한의 제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땅은 좋아 오곡이 잘 되었다. 풍속으로는 풍요롭게 지냈으며 누에를 치고 뽕나무도 길렀다. 그리하여 좋은 합사 비단과 베를 짰다. 옷을 만들어 입고 소와 길을 기르고 탔다. 그 풍속들은 馬韓과 같았다. 무기인 병장기 역시 馬韓과 같았다.
  처음에 아이가 태어나면 평평한 돌로 머리를 눌러 흡사 평평한 그릇처럼 납작할 정도로 하였다. 기쁠 때는 비파를 타면서 노래와 춤을 추며 즐겼다. 비파의 형태는 대나무에 13줄로 만든 것과 같았다.
비파는 秦나라 몽염(蒙恬)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13줄로 만들었다.
  晋나라 무제(武帝 司馬炎) 때 태강(太康.A.D.280∼289년) 元年에는 그 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방물(方物)을 바쳤다. 2年에 다시와 朝貢을 했으며 7年에 또다시 왔다고 적고 있다.

  ★ 양서(梁書)의 新羅편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다.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辰韓亦曰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 避役來適馬韓, 馬韓亦割其東界去之, 以秦人故, 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有似中國人,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爭皆爲徒, 不與馬韓同…』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辰韓이다. 辰韓은 역시 진한(秦韓)이다. 서로 萬里의 거리이다.
  전하는 말로는 秦나라 때 도망한 사람들이 부역을 피해 馬韓 이르렀다. 馬韓은 그 동쪽 경계를 떼어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진(秦)나라 사람들인 까닭에 진한(秦韓)이라 했다.
  그 나라의 말과 물건의 이름은 중국인과 같았다. 나라(國) 이름을 방(邦)이라 하고, 활(弓)을 호(弧)라고 하며, 적(賊)을 ‘구(寇)’라 하고, 술 따르는 것을 행촉(行觸)이라 하고, 서로 호칭하기를 도(徒)라 하였는데, 마한과 같지 아니했다.
  

  ◇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辰韓은 秦나라의 사람들이 힘든 부역을 피해  馬韓으로 도망을 와 생긴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辰韓의 初期에는 馬韓의 制度에 의해 움직여졌으나 후에 辰韓이 독자적으로 自立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新羅는 辰韓 즉 진한(秦韓)으로부터 생겨나게 되었다.



辰 韓 年 代 表

(眞朝鮮國:35世 1514년간, 姬姓, 東晉과 晉․晉韓․秦韓, 東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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