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랑방 > 바람에 새긴 역사
6.(의자왕 이후) 충의(忠義)의 표상, 흑치상지  
노성매

 

「조선왕조실록」

 세조 2년(1496년) 3월 28일.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는 전조(前朝)의 제사에 배향될 신하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왕께 올린다.

신라의 김유신·김인문, 고구려의 을지문덕, 그리고 백제의 흑치상지였다.

세조는 윤허했다.

집현전 학사들의 논의를 통해 선택되었던

백제 충의(忠義)의 표상은 계백이 아닌 흑치상지였다.

 

 

흑치상지를 백제의 배향신하로 올린 조선의 결정은

백제왕으로서의 부여융이었다.

임존성을 공격한 흑치상지는

원종을 위해 삼별초를 토벌했던 고려의 충신 김방경에 비견된다.

부여융을 백제왕으로 보았을 때,

지수신의 항거는 왕에 대한 반란이었다.

 

 

부여융은 615년에 출생하여, 644년 의자왕 4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660년 9월 의자왕과 함께 당으로 갈 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3년 후 49세가 된 부여융은 당군 7천과 함께 다시 백제로 돌아왔다.

 

신당서 유인궤열전에 의하면,

부여융을 백제로 보내줄 것을 요청한 사람은 유인궤였다.

 

표를 올려, 부여융을 등용하여 백제 백성들을 안정시키도록 청을 했다.

그리하여 당고종이 융을 웅진도독으로 삼았다.

又表用扶餘隆,使綏定餘眾 帝乃以隆為熊津都督

 

부여풍의 실정(失政)이 거듭되고 민심이 이반되던 차에,

당은 고구려원정에 실패, 신라와 고구려의 기세를 누를 우방국이 필요했다.

당은 백제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되었다.

의자왕의 적장자 부여융을 앞세웠다.

 

부여풍은 오랜 세월 왜(倭)에서 생활했다.

부여풍이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고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백제본토의 미약한 지지기반 탓이 가장 컸을 것이다.

배후가 든든하지 못한 통치자는 제 주장을 내지 못한다.

부여풍 역시 그런 상황에 처했으리라 짐작된다.

복신과 도침이 그를 왕으로 제대로 대접했을 리 없다.

‘우리 덕에 왕이 된’ 정도의 자리매김이었을 것이다.

 

도침이 복신이 죽이고, 부여풍이 복신을 죽인 일련의 반간계를 어느 나라에서 꽤했는지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자, 신라는 곧 백제공격령을 발동했다. 준비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부여풍은 왜(倭)에 구원을 요청했고,

당(唐)은 신라를 돕는다는 명분을 확보했다.

신라와의 합동 군사작전이었다.

광복이 되고 미국이 이승만을 앞세운 것처럼, 당군(唐軍) 7천과 함께 부여융은 백제로 돌아왔다.

신라와 왜에 대한 견제세력이면서 당과 밀착된 인물.

오랜 세월 태자였던 적통 왕위계승자.

 

하늘은 부여융 편이었다.

백제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백강구 전투로 부여풍이 몰락했다.

부여풍의 도성이던 주류성이 함락되고 풍의 가신(家臣)들도 자연스럽게 제거되었다.

 

663년 9월 7일 주류성을 함락한 신라군은 10월 21일부터 임존성 공격에 들어갔다.

신라본기와 김유신열전에는 당과 함께 공격했다는 기록이 없고, 당의 기록에도 없는 걸 보아, 이때 당은 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던 것 같다.

부여융을 내세워 세력확장을 꽤하려던 당으로서는 신라를 도울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신라가 패하여 하루라도 빨리 회군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당의 바람대로 신라는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신라로 회군했다.

 

문무왕 3년

지수신이 홀로 임존성에서 항거하며 항복하지 아니했다.

10월 21일부터 공격에 들어갔으나 이기지 못했다.

11월 4일 군대를 돌려 설[후]리정에 이르렀다.

獨遲受信據任存城 不下 自冬十月二十一日 攻之不克 至十一月四日斑師至舌[一作后]利停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는,

백강 전투 후 왜인들을 돌려보내는 등 전후처리를 끝내고,

군사들을 나누어 여러 성들을 공격하여 항복받으며 주류성에 이르렀다.

 

오직 임존성만은 지세가 험하고 성은 견고하였으며 또한 군량이 많아, 한 달을 공격하였으나 항복받지 못했다.

사졸들은 지쳐 싸우기를 싫어했다…

대왕이 말했다.

‘지금 성 하나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나, 여러 성들을 모두 항복받았으니 공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에 군대를 되돌려, 11월 20일 도성에 이르렀다.

分兵擊諸城降之 唯任存城 地險城固 而又粮多 是以攻之三旬不能下 士卒疲固肰[厭]兵

大王曰 今雖一城未下 而諸餘城保皆降 不可謂無功

乃振旅而還 冬十一月二十日至京

 

신라군이 백제로부터 철수했다.

그 후 임존성이 당의 회유를 받은 흑치상지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기록은 자치통감에만 언급되어 있다.

그 외 어디에도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공략했다는 기록이 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자치통감의 내용을 재편집했다.

 

인궤가 흑치상지에게 진심을 보이고, 그가 임존성을 빼앗아 스스로 공을 드러내도록 무구와 군량을 지급했다…

흑치상지와 사타상여가 마침내 임존성을 취하니, 지수신은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달아났다.

 仁軌以赤心示之 俾取任存自效 卽給鎧仗糧糒…二人訖取其城 遲受信委妻子 奔高句麗

 

구당서(舊唐書)는 이때로부터 280여년 후의 기록이다.

당 멸망 후, 극심한 사료부족으로 구당서를 제대로 편찬하기 힘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데 그보다 120여년 후의 자치통감 기록은 진실보다 스토리텔링에 가깝다.

 

  

세조2년(1456년) 3월 28일. 집현전직제학 양성지 상소

 

… 전대(前代)의 임금과 재상(宰相)을 제사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매년 봄ㆍ가을로 동교(東郊)에서

전 조선왕(前朝鮮王) 단군(檀君), 후 조선왕(後朝鮮王) 기자(箕子),

신라의 시조∙태종왕∙문무왕[두 왕은 고구려․백제를 통합하였음]

고구려의 시조∙영양왕[수병(隋兵)을 대패시킴]

백제의 시조, 고려의 태조∙성종∙현종∙충렬왕 이상 12위를 합제(合祭)하고,

신라의 김유신∙김인문, 고구려의 을지문덕, 백제의 흑치상지…

등을 배향(配享)하게 하소서.

                                                              -한국고전종합DB 번역 인용-

本朝以歷代君王散祭所都…乞每年春秋於東郊

合祭 前朝鮮王檀君 後朝鮮王箕子 新羅始祖 太宗王 文武王[二王統合麗濟] 高句麗始祖 嬰陽王[大敗隋兵] 百濟始祖

高麗太祖 成宗 顯宗 忠烈王 以上十二位

以新羅金庾信金仁問 高句麗乙支文德 百濟黑齒常之

近日所定前朝配享十六臣 及韓希愈 羅裕[禦哈丹有功] 崔瑩 鄭地[禦倭寇有功] 等配享

 

공이 아무리 많은 신하일지라도, 마지막에 조국을 배신한 자는 고금을 막론하고 외면받기 마련이다. 나라를 유지하고 왕좌를 지키는 힘은 신하들의 忠과 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열전을 보면,

열전1․2․3이 김유신,

열전4에  고구려의 을지문덕, 신라의 김인문과 나란히 백제의 흑치상지가 자리하고 있다.

계백은 열전7의 마지막이다.

 

김부식 역시 흑치상지를 백제 제일 충신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열전의 내용은 ‘배신자 흑치상지’라는 꼬리표를 달게 만든 신당서의 기록이다.

 

자국(自國)의 역사서 편찬에 남의 나라 기록을 그대로 베낀 예가 있던가.

교전 상대국의 기록으로 자국의 역사를 재단하는 나라가 있던가.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10년 8월1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양성지(梁誠之)가 상서(上書)하였다. …

 

신이 평소에 보던 삼국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인(漢人)과 싸우면 열에 일곱 번 이기고,

왜인과 싸우면 열에 세 번 이기며,

야인과 싸우면 열에 다섯 번 이긴다.’고 했습니다.

臣平日觀三國史記 “東人與漢人戰, 則十戰而七勝, 與倭人戰則十戰而三勝, 與野人戰則十戰而五勝”

 

조선 세조 때 양성지가 읽었다는 삼국사기의 내용이다.

자국의 역사기술답게 기록의 주체가 확실하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삼국사기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양성지가 읽었던 삼국사기에는 『제왕운기』 ‘백제 34왕’의 비밀이 기록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의자왕까지는 31왕이 된다.

 

  

 

( 2016년 10월 02일 17시 49분   조회:605 )   
이 름    비밀번호   

  
번호 제목 작성자 조회수 작성일
불세출의 명장, 흑치상지 노성매 18 2019-04-02
37 (환국) 3.마고성에 한 동이 물을 부우니 노성매 19 2019-05-03
36 (환국) 2.그들은 왜 바이칼 호로 갔을까 노성매 16 2019-04-30
35 (환국) 1.마고의 신화 노성매 19 2019-04-28
34 8.(흑치상지) 참고목록 노성매 10 2019-04-28
33 7.(흑치상지) 신원 노성매 16 2019-04-05
32 6.(흑치상지) 죽음Ⅱ 노성매 20 2019-04-05
31 5.(흑치상지) 돌궐의 대칸(大汗), 골돌록 격퇴 노성매 92 2019-04-03
1 2 3 4 5